Introduction - 똑똑한 여자의 자기표현, 향수
여성이라면 누구나 한두 개 정도의 향수를 갖고 있을 것이다. 남성조차도 향으로 자신을 표현할 만큼, 향수는 친근한 뷰티 아이템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몇 천 송이의 꽃을 압착해 단 몇 그램의 원액을 얻어내던 수천 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대중화, 다양화 된 것이다.
그러나 향수를 몇 개 갖고 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자신에게 완벽하게 어울리는 단 한개의 향수가 1백 개의 향수보다 낫다. 향수를 제대로 즐기는 고수가 되려면 몇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일단 향의 계열별 특성을 이해해보자. 플로랄, 시프레, 시트러스 등 향수의 기본이 되는 열두 가지 계열에 따라 향수를 분류하다 보면, 자신이 원하는 향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T.P.O.와 향수를 하나로 묶어 생각할 것.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에는 자신의 향도 함께 머물고 있으므로, 그 공간에 어울리는 향수를 선택하는 것이 고수가 되는 지름길이다. 어떤 향수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비오는 날의 센티멘털한 분위기를 고조시킬 수 있고, 맑은 하늘과 같이 상쾌한 느낌을 간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체형이나 얼굴형, 개성에 따른 향수를 골라보는 것도 향수를 즐기는 또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메이크업으로 가리지 못했던 날카로운 이미지나, 옷으로 숨기지 못했던 둔중함도 향수를 이용하면 은근하게 가릴 수 있다.
인간의 후각은 청각이나 시각 등 다른 것에 비해 먼저 발달한 감각기관이라고 한다. 또한 후각은 뇌 구조 중 하나인 변연계(Limbic System)와 직적접으로 연관되어 있는 유일한 감각이므로, 후각을 통해 뇌에 전달된 이미지는 다른 경로를 타고 온 것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다. 향수는 사람을 이미지화해 기억 속에 저장시킬 수 있는 유일한 후각적 자극이다. 자신만의 향을 찾아, 남들이 지니지 않은 유니크한 매력을 지닌 사람으로 거듭나보자.
향, 향수의 시작
휘발성 물질의 발산으로 자극받은 취신경의 감각 중 좋은 이미지로 다가오는 냄새인 향은, 사람의 개성과 분위기를 표현하는 인류 최초의 화장품이기도 하다. 제례를 위해 피워 올렸던 '향'에서 제2의 패션으로 불리는 오늘날의 '향수'로 변하기까지 수천 년에 걸친 향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태워서 향기 내다
'Perfume'의 어원은 라틴어에서 찾을 수 있다. 'through'를 뜻하는 'per'와 'smoke'를 뜻하는 'fumus'의 합성어로, 직역하면 '연기를 통하다'는 뜻이다. 지금으로부터 4 ~ 5천 년 전, 신과의 소통을 신성시했던 고대인들이 제단 앞에 나아갈 때 향내가 풍기는 나뭇가지나 나무의 진액(수지)을 태우며 깨끗하게 씻은 몸에 향기를 띄워 정신까지 맑게 가라앉혔던 것에서 기원한다. 침향, 백단을 비롯한 인도의 열대성 향료 식물로 인해 더욱 발달했던 인도 파미르 고원의 힌두교가 방향(芳香)의 발상지라는 설이 있는데, 이것을 정설로 친다면 이런 부향(付香)의 풍습이 동서양 모두 같은 의미를 지녔다는 짐작이 가능하다. 요즘의 향수는 거의 대부분 스프레이로 간편하게 뿌려 몸에 향을 배이게 하지만, 정유(精油)의 방법을 알지 못했던 당시엔 불을 이용한 훈향(薰香)이 최고의 향기 제조법이었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집트와 그리스, 로마 등을 거치며 발달한 향료는 점점 실용적인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고, 이를 깨달은 인간들은 향을 좀더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치장용품으로써의 용도라 더욱 강해진 향은 꽃을 주원료로 하게 되었는데, 특히 그리스와 로마시대의 귀족들은 장미와 함께 살았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장미에 집착했다. 연회장과 침실을 장미꽃으로 장식하거나 목욕할 때 장미향을 물 위에 띄우는 것은 물론, 요리를 하거나 술을 담글 때에도 장미를 넣었다고 한다.
설화 속의 향
그리스 · 로마신화나 성경, 우리나라의 설화집은 고대에 향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쉽게 알려준다. 구약성서의 출애굽기 30장에서는 '아론은 그 분향단 위에다가 향기로운 향을 피워야 하는데 아침에 등잔을 손질할 때마다 피워야 하고, 해거름에 등잔불을 켤 때에도 피워야 한다. 이렇게 너희는 향기로운 향을 야훼앞에서 대대로 항상 피워야 한다. (7 ~ 8절)' 와 '너는 제일 좋은 향료를 이렇게 구해들여라. 나무에서 나와 엉긴 몰약을 오백 세겔, 향기 좋은 육계향을 그 절반인 이백오십 세겔, 향기 좋은 향초 줄거리를 이백오십 세겔, 들계피를 성소 세겔로 오백 세겔, 그리고 올리브 기름 한 힌을 마련하여라. 이런 것들을 향 제조공이 하듯 잘섞어 성별하는 기름을 만들어라. (중략) 너는 이렇게 이런 것들을 거룩하게 하여라. 그리하면 이것들이 가장 거룩한 것이 되어 거기 닿는 모든 것이 거룩해지리라. (23 ~ 29절)' 등 두 곳에서나 제대향(祭臺香)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설화라고 다를까. 단군신화를 이야기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태백산의 '신단수'는 바로 향목(香木)으로 널리 사용되는 박달나무이다. 설화 속의 태백산이 현재 묘향산으로 불리는 것을 본다면, 전체가 오묘한 향으로 뒤덮여 있는 산을 제사의 장소로 사용한 것이다. 신라시대의 야사에는 향이 최음제로도 사용되었음을 은밀히 적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진지왕와 도화녀로 잠자리에서 향을 사용한 후 이레 동안이나 두 사람의 몸에서 향내가 지워지지 않았다 한다.
반면 그리스신화는 아프로디테가 내린 장미 향유로 얼굴의 종기를 고친 밀토라는 여인을 통해 향의 치유력을 말한다. '희랍 상인의 딸로 몹시 가난했던 밀토는 값비싼 제물을 드릴 수 없어 매일 아침 신선한 꽃으로 화관을 만들어 아프로디테의 신전에 제사를 드렸다. 그녀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는데 어느 날부턴가 뺨에 종기가 자라기 시작해 큰 슬픔에 빠졌다. 어늘 날 밤 아프로디테가 꿈에 나타나 그녀에게 제단에서 장미 몇 송이를 빼어 뺨에 바르라고 했다. 여신이 일러준 대로 하자 그 종기가 씻은 듯이 사라지고 그녀의 아름다움은 완벽하게 회복되었다.'
미라도 향수를 뿌렸다?
기원전 2500년경, 훈트 지방을 여행하던 제 5왕조가 8만 포대의 향료를 사들였을 만큼 향료 문화의 천국이었던 이집트는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향료 무역과 제조법을 이집틔 경제의 중심으로 삼고 나날이 발전을 거듭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몰약이라 알려져 있는 미르(myrrh)다. 몰약은 동방박사가 아기예수에게 황금, 유황과 함께 바쳤던 구중향료(九中香料)로 잘 알려져 있는 향료이긴, 하지만 미라(mirra)의 어원이 될 만큼 강력한 방부력을 가지고 있다. 물론 미라를 만들 때 삼나무나 시더우드 증의 향료도 함께 넣긴 하지만, 시체의 부패를 막아주는 가장 중요한 성분은 미르, 바로 몰약 이었다. 미르는 살아있는 사람에게도 쓰였다. 잦은 전쟁으로 죽음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병사들은 자신이 죽을 경우 시체라도 온전하게 보전하기 위해 향료를 몸에 뿌리고 전쟁터에 나갔다고 한다. 단순히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에서 의학적, 그리고 영원불멸의 내세를 위한 종교적 목적이 더해진 셈이다.
이것은 이집트 제 18왕조 파라오 (기원전 1580 ~ 1314년)인 투탕카멘의 무덤 안에서 발견된 향고(香暠)로 재확인할 수 있다. 향고는 동물성 지방 혼합물이라 손에 묻히면 체온에 의해 녹아 끈적끈적한 텍스처로 변하는 반고체 향이다. 유향이나 인도산 감송향과 비슷한 향이 마치 마타리과 식물의 냄새를 연상시키는데, 석고로 만든 아라배스타 항아리에 채워진 이 향고는 3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잔향을 내뿜고 있다. 그만큼 강한 방부성과 높은 방향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십자군 전쟁과 향
당시 중동에서 10년 동안 생산할 양의 향료를 애첩의 장례를 치르는 단 하루만에 다 써버린 네로 황제, 그리고 언제나 장미나 수선화, 백합 등의 꽃향기를 은은하게 넣은 유지를 몸에 바른 귀족들…. 중세로 들어서며 향수의 수요시장은 거대해져만 갔다. 그러나 공급시장의 향료재배나 제조기술을 턱없이 모자랐다. 게다가 주재배지역인 동양과 사용처인 서양을 잇는 길은 산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서야 가능했기 떄문에, 신선한 향료를 구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오죽하면 고품질, 고농축의 정유가 화폐 대용으로 사용되기까지 했을까.
하지만 13세기 초, 십자군 원정대에 의해 판로가 뚫렸다. 서유럽의 그리스도 교도들이 투르크족에 빼앗긴 성지 예루살렘과 팔레스티나를 탈환하기 위해 떠났던 십자군 원정(1096 ~ 1270년)은 여러 번의 진격과 후퇴를 거듭하며 초기의 신앙적 정열에 호기심과 모험심, 약탈욕이 뒤섞여 성전(聖戰)이라는 본디의 의미를 잃었던 전쟁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동서 유럽 무역의 활로를 개척하는 기회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방의 신비로운 향료를 서양에 전하는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1202년의 제 4차원정. 베네치아 상인과 합세한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정복, 동양르ㅗ 총아는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하게 되었는데, 십자군 기사를 통해, 그리고 상인들의 동방 무역을 통해 흘러들어간 비단과 자수품, 행료들은 유럽 전체를 오리엔탈풍의 향으로 은은하게 물들였다.
※ 방년(芳年)? 총각(總角)?
외 18세 된 여자는 방년, 남자는 총각이라 할까?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의 침방에 흘러나와 뭇 남성들을 미혹시켰던 머스크 향에 그 비밀이 숨어있다. 두 단어 모두 사향사슴의 생식기(生殖期)에 비유해 중국의 명의들이 명명한 것. 동물의 암컷에서 나는 냄새를 방(芳)이라 하는데-반면, 식물의 냄새는 향(香)이라 한다- 암사슴이 암내를 품겨 교미할 수 있는 시기가 18개월이 되었을 때이기 때문. 수사슴 역시 18개월이 지나야 뿔이 나고, 비로소 교미가 가능하다고 한다.
연금술사의 유레카
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고 중세 연금술사들을 괄시하지는 말자. 분명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는 못했어도, 그들이 없었다면 향수는 훨씬 더 늦게 세상에 태어났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꿔준 것은 우연히 발견해 낸 알코올 덕분이다. 연금술사들은 그때까지 향수를 만들기 위해 사용되었던 물이나 기름 등의 기제보다 더욱 뛰어난 용해력을 지닌 알코올을 포도주 증류과정 중 발견했고, 각종 향신료와 섞기 시작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향수를 만들어냈다. 이는 강력한 휘발성향까지 지니고 있어 오랬동안 향을 유지시키는 알코올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로, 단순히 원료로만 머물렀던 향을 근대적 개념의 향수로 변신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알코올의 혜택을 받아 만들어진 최초의 향수는 1370년경 선보인 헝가리 워터(Hungary Water). 로즈마리와 수지를 증류시켜 생긴 알코올에 증류과정에서 발생한 로즈마리의 잔여물을 첨가한 것으로, 오늘날의 오 데 코롱(Eau De Cologne)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향을 지니고 있다. 헝가리의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헌납된 후 유래한 이름이지만, 카밀로파의 수도원-이 당시 포도주와 향수는 수도원에서 제조되었다- 에서 만들어졌다 하여 일설에서는 카밀로 워터라 부르기도 한다.
향료를 찾아 돌진하다
콜럼버스, 베스코 다 가마, 마젤란 등 탐험가 집단이 미지의 바다를 향해 끊임없이 도전의 닻을 올리고 서쪽으로 키를 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유럽의 새로운 열강으로 자리 잡은 스페인, 포르투갈, 에스파냐 등이 그때까지 동양과 서양의 관문 행세를 했던 로메에 관세를 지불하지 않고 인도나 동남아 등지로부터 향료를 마음껏 가져오기 위한 향료군도를 찾기 위해서였다. 당시 후추나 계피, 전향유 같은 향료는 저장한 고기와 생선의 부패를 막아주고 맛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페스트나 콜레라 등 전염병을 방지한다고 믿을 정도로 약품으로서의 가치도 높았으며, 금은보화와 맞바꿀 수 있을 만큼의 대단한 재화가치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새로운 해로(海路)의 발견으로 유입된 향료는 향수의 대중적 발전을 부추겼고, 특히 같은 시기 북유럽을 근간으로 한 문예부흥기에서 예술과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향수가 미의 기준으로 새롭게 인식되었다. 1508년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성마리베라 도미니카회 수도사는 향료조제용 아틀리에에서 '유리향수'를 만들어 당시 유럽 상류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1533년 앙리 2세와 결혼한 피렌체 메디치가(家)의 딸 카트린느 드 메디치가 조향사인 L. 비앙코와 함께 파리 노트르담 사원 근처에 향수 전문점을 연 이후부터 향수의 메카는 이탈리아에서 파리로 옮겨졌다.
악취를 가리는 베일

